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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31

가정 /이상 가정 - 이상 -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 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 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 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 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1936)- 해 설 [시상의전개 방식(구성)] * 1행 : 자아와 관계없이 돌아가는 가정 생활 * 2행 : 생활인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강박관념과 자책의표현 * 3행 .. 2021. 12. 9.
가재미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 2021. 12. 9.
가을의 기도 가을의기도 - 김현승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1957)-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종교적, 기구적, 명상적 ◆ 시적자아 : 경건하고 겸허한 자세로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열망하는 자아 ◆ 표현 : 기도조의 어조로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냄. 동일한문장 구조를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함. 시행의점층적 증가 ◆ 중요시구 * 낙엽들이 지는 때 → 생명체의 숙명을 자각하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운.. 2021. 12. 9.
가을에 가을에 김명인 - 모감주숲길로 올라가니 잎사귀들이여, 너덜너덜 낡아서 너희들이 염주소리를 내는구나, 나는 아직 애증의 빚 벗지 못해 무성한초록 귀때기마다 퍼어런 잎새들의생생한 바람 소릴 달고 있다. 그러니이 빚 탕감받도록 아직은저 채색의 시간 속에 나를 놓아 다오. 세월은누가 만드는 돌무덤을 지나느냐, 흐벅지게 참꽃들이기어오르던 능선 끝에는 벌써잎 지운 굴참 한 그루 늙은길은 산맥으로 휘어지거나 들판으로 비워지거나 다만억새 뜻 없는 바람 무늬로 일렁이거나.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 표현 :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모감주 → 무환자나무, 절이나 묘지 또는 집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열매는염주를 만드는데 쓰임. * 숲길 → 화자가 소멸(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공간임. * 잎사귀들.. 2021. 12. 9.